돌잡이 물건 의미부터 답할게요.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일생의례사전은 돌잡이를 「무엇을 집는지 보아 장래를 짐작해보는 풍속」으로 적고 물건마다 풀이를 달았어요. 긴 실과 국수는 무병장수를 뜻하고, 쌀과 곡식, 돈은 부자가 될 것을 예견한다고 했어요. 남자아이가 활과 화살을 잡으면 용맹한 무인, 책과 붓, 먹을 잡으면 학문에 능한 문인이 되리라고 봤어요. 칼과 자, 실패와 가위 같은 바느질 도구는 여자아이 상에 올린다고 적었고, 여자아이가 이걸 잡으면 바느질과 길쌈에 능한 현모양처가 되리라고 풀었어요.
조건이 하나 있어요. 이건 아이의 앞날을 짐작해 보던 옛 풍속의 풀이를 사전이 옮겨 적은 거예요. 표준국어대사전도 돌잡이를 「어느 것을 고르는가로 그 아이의 장래 운명을 점친다」고 풀었고, 한국의식주생활사전도 돌상과 함께 「아기의 장래를 예측해 보는 돌잡이상」을 차린다고 썼어요. 모두 그런 풍속이 있었다는 설명이고, 이 글도 그 풀이를 옮길 뿐 어느 아이의 앞날도 말하지 않아요. 아이가 잡은 물건이 그 뒤의 삶과 맞았는지 여러 사례로 견줘 본 자료는 이번에 받은 사전과 기록에 없었어요. 정조의 행록처럼 왕이 세상을 떠난 뒤 돌잡이 장면을 학문의 조짐으로 되돌아본 글이 있을 뿐이에요. 요즘 돌잡이 상에 오르는 마이크와 청진기는 사전에 뜻이 나와요. 마패는 같은 박물관의 한국민속상징사전에 부귀영화의 상징물로 여긴 풍습이 나오지만 돌잡이 풀이로 적힌 문장은 아니고, 판사봉의 뜻은 찾지 못했어요.
사전이 인용한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남북조시대 교훈서 『안씨가훈』에 닿아요. 조선에서는 1791년 정조실록에 원자가 채색 실을 먼저 잡았다는 장면이 남아 있어요. 아래에서 물건 뜻, 요즘 물건, 활과 화살의 유래, 옛 기록 속 아이들이 실제로 잡은 것 순서로 볼게요.
돌잡이 물건별 의미, 두 사전이 적은 그대로
국립민속박물관은 같은 물건을 두 사전에서 조금 다르게 풀었어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의 돌잡이 항목과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의 돌상 항목을 나란히 놓으면 이래요.
| 물건 | 한국일생의례사전 (돌잡이) | 한국의식주생활사전 (돌상) |
|---|---|---|
| 실 | 긴 실은 무병장수 | 실타래는 장수 |
| 국수 | 무병장수 | 돌잡이 물건 목록에는 없고, 돌상 음식인 긴 국수로 나와요 |
| 쌀, 곡식 | 부자가 될 것 | 쌀은 부귀 |
| 돈 | 부자가 될 것 | 부귀 |
| 활, 화살 | 남자아이가 잡으면 용맹한 무인 | 뛰어난 무예 |
| 책, 붓, 먹 | 남자아이가 잡으면 학문에 능한 문인 | 책과 필기구는 훌륭한 학자 |
| 칼, 자, 실패, 가위 | 여자아이가 잡으면 재주가 뛰어나고 바느질과 길쌈에 능한 현모양처 | 바느질도구는 뛰어난 손재주 |
실과 국수 풀이에는 둘 다 「긴」이라는 말이 붙어 있어요. 두 사전은 길이가 왜 수명으로 이어지는지 따로 풀지 않았지만, 같은 박물관의 한국민속신앙사전 실타래 항목에 설명이 있어요. 이 항목은 돌잡이 상의 물건마다 상징이 있다며 돈이나 쌀은 부, 책이나 연필은 학식, 실타래는 장수를 뜻한다고 적었고, 이 때문에 부모들이 아기가 실타래를 잡도록 이끌기도 한다고 했어요. 아기가 실타래를 잡으면 부모가 이것을 아기의 목에 걸어 주는데, 그 까닭을 「실타래의 긴 실처럼 아기의 수명이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이라고 풀었어요.
두 사전 모두 돌잡이 상을 성별로 나눠 차리던 풍속을 적었어요. 갈리는 곳은 풀이를 적는 방식이에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은 남자아이 상에 종이와 붓, 책과 먹, 활과 화살 같은 학문이나 무예와 관련된 물품을, 여자아이 상에 칼과 가위, 실패와 옷감, 자와 바늘 등을 올린다고 적었어요. 실 꾸러미와 국수, 곡식과 돈은 남녀 공통이에요. 풀이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나눠 달았고, 이 물건들에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역할과 그에 관한 기대가 담겨 있다」고 덧붙였어요.
한국의식주생활사전도 전통 풍습에서는 여자아기는 바느질도구, 남자아기는 활과 화살을 올렸다고 적은 뒤, 지금은 부모가 아기에게 바라는 염원을 담은 품목을 골라 올린다고 했어요. 이 사전의 풀이 문장에는 성별 구분이 없어서 오른쪽 칸도 성별 없이 옮겼어요. 이 사전이 꼽은 돌잡이용 물품은 쌀, 돈, 책, 종이, 필기구, 굵은 실타래, 활과 화살, 바느질도구 등이에요.
같은 한국일생의례사전에서 혼례 때 오가는 단자를 다룬 글은 사주단자 쓰는 법을 옮긴 글이에요.
요즘 돌잡이 물건, 마이크와 청진기는 사전에 나와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의 돌 항목은 돌잡이 물건이 바뀌고 있다고 따로 적었어요. 「과거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에 근거한 것에서 벗어나」 아래 물건으로 다양해지고 있다는 거예요.
| 요즘 물건 | 사전이 붙인 뜻 |
|---|---|
| 청진기 | 의사 |
| 골프공, 야구 글러브 | 운동선수 |
| 마이크 | 연예인 |
| 휴대전화 | IT 전문가 |
사전 문장은 이 물건들을 들고 「등」으로 끝나요. 그러니 목록이 이게 다라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마패나 판사봉, 마우스처럼 여기 없는 물건은 이번에 열어 본 사전과 옛 기록 어디에서도 돌잡이에서의 뜻을 정한 문장을 찾지 못했어요.
마패는 같은 박물관의 한국민속상징사전에 항목이 따로 있어요. 역마를 쓸 수 있음을 증명하던 패로 풀고, 암행어사가 출두할 때는 국가 권력의 엄중함을 상징했다고 적은 뒤, 「민간에서는 마패를 부귀영화의 상징물로 여기는 풍습이 생기기도 했다」고 덧붙였어요. 돌잡이와 이어 말한 문장은 아니에요. 한국의식주생활사전도 지금은 부모의 염원을 담은 품목을 골라 올린다고만 했지, 목록 밖 물건의 뜻을 따로 정하지는 않았어요.
몇 가지를 올려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놓는지, 몇 번 잡게 하는지 정한 문장도 자료에 없었어요. 아래 옛 기록 가운데 1791년의 원자는 실을 먼저 잡고 이어서 다른 물건을 더 집었어요.
국어사전이 풀어 둔 돌잡이와 돌상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는 이래요.
- 돌잡이는 「첫돌에 돌상을 차리고 아이에게 마음대로 골라잡게 하는 일」이에요. 「흔히 실·돈·곡식·붓·책·국수·활 따위를 돌상에 차리는데, 어느 것을 고르는가로 그 아이의 장래 운명을 점친다」고 이어져요. 같은 말로 돌잡히기를 올렸어요.
- 돌상은 「돌날에 돌잡이할 때 차려 놓는 상」이에요. 같은 말로 백완반(百玩盤)을 올렸어요.
- 돌날은 「첫돌이 되는 날」이고, 돌떡은 「돌날을 축하하기 위하여 만들어 먹는 떡」이에요.
돌잡이를 앞날을 내다보는 풍속으로 적은 건 국어사전만이 아니에요. 두 민속사전도 장래를 짐작하거나 예측하는 풍속으로 적었어요. 다만 같은 풍속을 두고 다른 풀이도 함께 실었어요.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은 돌잡이를 부모와 친지가 아기의 적성과 인성을 가늠해 장차 교육에 도움을 얻으려는 행사라고도 할 수 있다고 적었어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은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돌잡이의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옮겼어요. 아이가 1년쯤 되면 앉고 서서 움직이며 슬기가 자라니, 이때 갖가지 물건을 놓고 생각이 돌아가는 것을 보려 한다는 거예요.
중국 『안씨가훈』의 기록은 성품을 봤어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은 돌잡이를 「중국 육조시대부터 있었던 풍속」이라고 하면서 『안씨가훈』을 인용했어요. 사전의 번역은 이래요. 「남자는 활과 화살과 종이와 붓을, 여자는 칼과 자와 바늘과 실을 쓴다. 또한, 음식물과 진귀한 옷, 장난감을 아이 앞에 차려 놓고 아이의 선택에 따라 장래를 시험한다.」
같은 대목을 조선 후기 학자 이익도 『성호사설』의 「수반(晬盤)」 항목에 옮겼어요. 원문은 「男則用弓矢紙茟 女則刀尺鍼縷」이고, 무엇을 보려 했는지는 「以驗貪廉愚智」라고 적혀 있어요.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으로는 「앞으로 탐하거나 청렴할 것과 어리석거나 슬기로울 것을 증험한다」예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은 같은 대목을 「장래를 시험한다」로 옮겼어요. 『성호사설』이 옮긴 원문 글자로 보면 『안씨가훈』이 시험한다고 적은 것은 직업이 아니라 탐욕과 청렴, 어리석음과 슬기였어요. 같은 문장에는 이 시험을 시아(試兒)라고 불렀다는 말도 나와요.
이익은 이 풍속이 「옛날 뽕나무 활과 쑥대 화살로써 사방을 쏘던 것과 같은 뜻」이라고 보면서도, 「이 풍속이 어느 때에 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적었어요. 번역본 주석은 수반을 「돌잔치의 소반」으로 풀었어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은 조선의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안씨가훈』을 인용해 돌잡이의 역사가 오래됐다고 설명했다고도 전해요.
활과 화살은 『예기』의 뽕나무 활에서 왔다는 설명
1783년 9월 7일, 정조는 원자의 첫돌을 맞아 서울과 지방에 윤음을 내렸어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은 이 원자를 문효세자로 적었어요. 신역 정조실록 번역은 이렇게 적었어요. 「활과 화살을 차려 놓는 의식이 예로부터 있었으니, 이는 남자에게 사방을 경략할 뜻이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원문은 「弧矢之設, 從古有之, 所以示男子有志四方之意」예요.
번역본 주석은 이 말을 『예기』 「내칙」에서 인용한 것으로 풀었어요.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문 왼쪽에 활을,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허리에 차는 수건을 문 오른쪽에 놓아두었다는 대목이에요. 주석은 「본래는 활만 언급하였는데 나중에 활과 화살을 놓아두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한다」고 덧붙였어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이 풍속에서 나온 말이 둘 있어요. 상호봉시(桑弧蓬矢)는 「남자가 큰 뜻을 세움을 이르는 말」이고, 남자가 태어나면 뽕나무 활과 쑥대 살을 천지 사방에 쏘던 중국 풍속에서 왔다고 풀었어요. 현호(懸弧)는 「뽕나무로 만든 활을 문에 걸어 놓는다는 뜻」으로, 사내아이가 태어남을 가리켜요.
정조는 이 윤음에서 활과 화살의 뜻을 한 걸음 넘겼어요. 원자에게 거는 기대는 「사방을 경략하는 데 뜻을 두는 정도가 아니다」라고 하고는, 기근이 든 여섯 도에서 밀린 환곡의 납부를 미뤄 주라고 명했어요. 그리고 이 정사가 「뽕나무로 만든 활과 쑥대로 만든 화살이라는 두 가지 물건에 비해 의미가 크지 않겠는가」라고 물었어요. 같은 날 두 기사에는 원자가 색동옷을 입었다는 말은 있지만, 돌상에서 무엇을 잡았는지는 나오지 않아요.
한국고전종합DB에서 돌잡이를 검색하면 1736년 영조실록 반교문도 걸려요. 번역문에 「말을 배우고 걸음을 배워 일주년의 돌잡이를 하기에 이르렀으니」라는 구절이 있어서예요. 그런데 원문은 「學言學步, 歲且周於懸弧」예요. 번역의 돌잡이 자리에 원문은 현호를 썼고, 무엇을 집었다는 글자는 없어요.
옛 기록 속 아이들은 실제로 무엇을 잡았나
한국고전종합DB에서 돌상과 돌잡이로 찾은 장면을 모으면 이래요.
| 기록 | 아이 | 돌상에서 잡은 것 |
|---|---|---|
| 정경운 『고대일록』 1597년 4월 25일 | 아들 주복 | 책을 골라잡고 붓을 집었다고 나중에 들음 |
| 윤증 『명재유고』 시 | 후(厚) | 활과 화살을 먼저 집음 |
| 혜경궁 행록 (신역 정조실록 부록) | 정조 | 먼저 붓과 먹을 잡고 책을 펼쳐 봄 |
| 정조 행장 (같은 부록) | 정조 | 완구는 거들떠보지 않고 책을 펼쳐 봄 |
| 신역 정조실록 1791년 6월 18일 | 원자 (훗날 순조) | 채색 실, 다음으로 활과 화살, 악기 |
| 효유헌성왕대비 언교 (헌종실록 부록) | 헌종 | 필묵과 책을 먼저 잡음 |
정경운은 정유년 4월 25일 일기에 아들 주복의 생일이라고 적었어요. 돌상에서 무엇을 집는지 보고 싶었지만 비가 물 붓듯 내려 집에 가지 못했고, 「나중에 들으니, 아들이 책을 골라잡고 붓을 집었다고 한다. 기쁜 일이다」라고 남겼어요.
윤증의 시는 제목이 「聞厚兒晬盤先執弓矢」예요. 번역 제목은 「후(厚)가 돌상에서 활과 화살을 먼저 집었다는 말을 듣고」이고, 첫 구가 「네가 활을 집었다니 나도 기운 솟는구나」예요. 이어서 「남아라면 호랑이와 같이 힘이 세어야만」이라고 적었어요. 활과 화살을 무예로 읽은 풀이가 시에 그대로 담겼어요. 후가 누구인지는 이 시 본문에 나오지 않아요.
이익은 손자 여달의 돌잔치에 시를 지어 보냈는데, 거기에는 잡은 물건 대신 바람이 적혀 있어요. 「돌상에 올라 있는 붓이랑 먹을 잡거라」예요. 번역본 주석은 이 손자를 1731년생 이구환으로 보면서, 여달은 아명인 듯하다고 적었어요.
정조의 첫돌은 두 글이 조금 다르게 적었어요. 혜경궁이 써서 내린 행록은 붓과 먹을 먼저 잡고 책을 펼쳤다고 했고, 신하가 올린 행장은 수많은 완구를 거들떠보지 않고 책을 펼쳤다고 했어요. 두 글 모두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에 왕을 기리려고 쓴 글이에요. 행록은 이 장면을 두고 「학문이 탁월할 조짐이 벌써 이때에 보였던 것」이라고 적었어요. 돌잡이 장면을 훗날의 삶과 이어 적은 글은 이번에 찾은 자료 가운데 이런 왕실 회고뿐이었어요. 그래서 이 장면은 돌잡이가 앞날을 맞힌 증거라기보다 왕의 삶을 기리는 글에 실린 일화예요. 헌종의 언교도 세상을 떠난 선왕을 두고 쓴 글이에요. 필묵과 책을 먼저 잡았다는 말 바로 뒤에, 재기가 뛰어나 두세 살 때 『천자문』의 1백여 자를 통했다는 이야기를 이어 적었어요.
이 표는 이번에 검색으로 찾은 장면만 모은 거예요. 옛사람들이 무엇을 많이 잡았는지 보여 주는 통계는 아니에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이 인용한 이문건의 『양아록』(1552년 정월 5일)과 오희문의 『쇄미록』에도 돌잡이 장면이 있지만, 사전 인용에는 무엇을 잡았는지가 나오지 않고 원문은 이번에 열지 않았어요.
1791년 원자의 돌, 실록이 적은 장면
이 장면은 조금 더 자세히 볼게요. 신역 정조실록 정조 15년 6월 18일 기사는 「이날은 자궁의 탄신일이고, 원자의 첫돌이었다」로 시작해요. 자궁은 혜경궁 홍씨예요. 국조보감은 이 원자가 1790년 6월 18일에 창경궁 집복헌에서 태어났다고 적었어요. 혜경궁의 생일과 원자의 첫돌이 같은 날이었던 거예요.
| 항목 | 신역 정조실록 (이기영 역, 2020) | 원문 |
|---|---|---|
| 돌상 | 집복헌에 온갖 노리개를 담은 쟁반 | 設百玩盤于集福軒 |
| 차림 | 사유 화양건, 보라색 비단 겹저고리 | 着四斿華陽巾, 披紫羅裌衫 |
| 처음 잡은 것 | 채색 실 | 先執綵線 |
| 다음에 잡은 것 | 활과 화살, 악기 | 次提弧矢管玄 |
원문의 「百玩盤」은 표준국어대사전이 돌상과 같은 말로 올린 백완반이에요. 국사편찬위원회 누리집의 예전 번역은 다음에 잡은 것을 「다음으로는 화살과 악기를 집었다」로 옮겼어요. 두 번역 모두 채색 실이 첫째라는 점은 같아요.
이 기사에는 원자가 잡은 실이나 활을 어떻게 풀었는지가 없어요. 정조는 각신과 승지에게 들어와 보게 했고, 신하와 군졸, 큰길의 백성에게까지 떡을 내렸다는 데서 기사가 끝나요. 같은 날을 적은 국조보감은 원자의 옷에서 절검하려는 뜻을 본다는 신하의 말과, 옷 길이가 서너 살 아이와 다름없다는 정조의 말을 옮겼지만 잡은 물건은 적지 않았어요.
신역 화면은 이날을 양력 1791년 7월 18일로 표시해요. 옛 기록의 날짜는 음력이라서, 음력 생일을 해마다 양력으로 옮기면 날짜가 달라져요. 그 방법은 음력 생일의 양력 날짜를 다룬 글에 정리돼 있어요. 돌을 음력 생일로 치를지 양력 생일로 치를지 정한 문장은 이번 자료에 없었어요.
돌상에 함께 올리는 음식의 뜻
돌잡이 물건 옆에는 음식이 함께 올라가요. 두 사전이 적은 뜻은 이래요.
| 음식 | 사전이 적은 뜻 |
|---|---|
| 백설기 | 신성함과 정결, 아이의 순진무구함 |
| 수수팥경단 | 덕을 쌓으라는 뜻, 붉은 팥으로 잡귀와 액을 물리침 |
| 긴 국수 | 무병장수 기원 |
| 인절미 | 끈기와 단단한 마음 |
| 오색송편 | 만물의 조화 |
| 무지개떡 | 아기의 꿈이 무지개처럼 이루어지기를 |
| 미나리, 대추 | 미나리는 장수와 자손 번창, 대추는 자손 번창 |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은 지역과 가풍에 따라 차림이 달라도 백설기와 수수팥경단은 반드시 차린다고 적었어요. 서울에서는 미나리를 홍실에 묶어 올린다고 했어요. 상은 모가 나지 않은 둥근 상을 쓰는데,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를 보호하려는 마음과 모나지 않은 성품으로 자라길 바라는 뜻이 있다고 풀었어요. 예전에는 돌상과 돌잡이 물품을 이웃끼리 돌려 가며 썼다는 말도 있어요.
나이와 생일을 세는 다른 풍속은 환갑 나이를 만 나이와 한국식 나이로 따져 본 글에 정리돼 있어요.
사전과 기록이 정한 것, 정하지 않은 것
- 물건 뜻은 아이의 장래를 짐작해 보던 옛 풍속의 풀이를 사전이 옮긴 거예요. 실과 국수는 무병장수, 쌀과 돈은 부자나 부귀, 활과 화살은 무예, 책과 붓과 먹은 학문이에요.
- 성별로 나눈 목록은 옛 풍속을 적은 거예요.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은 지금은 부모가 바라는 뜻을 담은 물건을 골라 올린다고 적었어요.
- 요즘 물건은 청진기, 골프공, 야구 글러브, 마이크, 휴대전화 등이 사전에 나와요. 그 밖의 물건은 돌잡이에서의 뜻을 정한 자료를 찾지 못했어요.
- 물건 수와 순서, 잡는 횟수는 정해진 규칙을 찾지 못했어요.
- 아이가 무엇을 잡든 그 결과가 앞날과 맞았는지 여러 사례로 견줘 본 자료는 없었어요. 왕실 행록과 언교의 일화는 훗날 되돌아본 회고예요.
이 글이 확인하지 않은 것
- 마패, 판사봉, 마우스, 오방색 실을 돌잡이에서 무엇으로 풀이하는지는 자료에 없어요. 이번에 받은 민속사전들, 국어사전, 한국고전종합DB 기록 어디에도 돌잡이 물건으로서의 풀이는 없었어요. 다만 한국민속상징사전 마패 항목은 「민간에서는 마패를 부귀영화의 상징물로 여기는 풍습이 생기기도 했다」고 적었어요. 돌잡이와 이어 말한 문장은 아니에요.
- 옛 문헌 넷의 원문은 직접 열지 않았어요. 『양아록』, 『쇄미록』, 『지봉유설』, 『안씨가훈』은 한국일생의례사전과 『성호사설』의 인용으로만 확인했어요.
- 1783년의 원자가 돌상에서 무엇을 잡았는지는 찾지 못했어요. 그날 두 기사에는 활과 화살 의식의 뜻만 나와요.
-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이 인용한 곽주 서간문의 연도는 대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본문에 옮기지 않았어요.
- 아이가 잡은 물건과 그 뒤의 삶을 여러 사례로 견줘 본 자료는 없었어요. 정조의 행록과 헌종의 언교는 세상을 떠난 왕을 기리며 돌잡이 장면을 되돌아본 글이에요. 이 글은 풍속과 기록만 옮겼어요.
정리하면
- 한국일생의례사전은 돌잡이를 장래를 짐작해 보던 풍속으로 적고, 긴 실과 국수는 무병장수, 쌀과 곡식과 돈은 부자, 남자아이가 잡은 활과 화살은 무인, 책과 붓과 먹은 문인으로 풀었어요. 바느질 도구는 여자아이 상에 올렸다고 적었어요.
-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은 같은 물건을 성별 없이 부귀, 장수, 학자, 무예, 손재주로 풀고, 지금은 부모의 바람을 담아 고른다고 적었어요.
- 청진기, 골프공, 야구 글러브, 마이크, 휴대전화 등은 요즘 다양해진 물건으로 사전에 나와요. 마패는 민속상징사전에 부귀영화의 상징물로 나오지만 돌잡이 풀이는 아니에요.
- 『성호사설』이 옮긴 『안씨가훈』 원문 글자로 보면, 아이의 선택으로 탐욕과 청렴, 어리석음과 슬기를 보려 했어요. 활과 화살은 『예기』의 뽕나무 활 풍속과 이어진다는 주석이 있어요.
- 1791년 6월 18일 정조실록에서 훗날 순조가 된 원자는 채색 실을 먼저 잡고 이어서 활과 화살, 악기를 집었어요. 실록은 그 물건을 풀이하지 않았어요.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일생의례사전의 돌잡이와 돌 항목,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의 돌상 항목, 한국민속신앙사전의 실타래 항목, 한국민속상징사전의 마패 항목,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의 신역 정조실록·영조실록·국조보감·고대일록·명재유고·성호전집·성호사설·헌종실록 부록,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누리집의 원문을 옮겼어요. 조회 시점은 2026년 10월 5일 오후 8시 34분에서 8시 40분 사이이고, 실타래와 마패 항목은 같은 날 오후 9시 4분에 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