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단자 쓰는 법을 한 문단으로 줄이면 이래요.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일생의례사전은 『광례람』 제작법과 사주단자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어요. 흰 간지를 다섯 칸으로 접어 가장 가운데 칸에 「○년 ○월 ○일 ○시」를 먹으로 쓰고, 대간지로 만든 겉봉에 「四柱」 두 글자를 써요. 단자를 봉투에 넣은 뒤에는 뚜껑을 접기만 하고 풀로 붙이지 않아요. 그다음 붉은 쪽이 겉으로 오게 겹보자기로 싸고, 끈을 매는 대신 「근봉」이라고 쓴 종이 띠를 둘러요.
조건이 하나 있어요. 이건 의례서와 민속사전이 적어 둔 방식이고, 오늘날 나라에서 정해 둔 서식은 아니에요. 현행 건전가정의례준칙에도 사주단자라는 말은 나오지 않아요. 지역마다 함께 보낸 물건과 적는 방식이 달랐고, 다산 정약용은 태어난 시는 빼고 생년월일만 쓰자고 주장하기도 했어요. 아래에서 종이, 칸, 봉투, 보자기 순서로 사전 문장을 따라가 볼게요.
사주단자는 무엇이고 언제 보내나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은 사주단자를 「혼인할 남자의 사주인 생년·생월·생일·생시를 적어 청혼할 여자의 집에 보내는 단자」라고 정의했어요. 표준국어대사전은 「혼인이 정해진 뒤 신랑집에서 신붓집으로 신랑의 사주를 적어서 보내는 종이」라고 풀었어요.
보내는 때를 두고 두 사전의 말이 조금 달라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은 「약혼 또는 정혼의 의미에서」 청혼할 여자의 집으로 보낸다고 했고, 표준국어대사전은 「혼인이 정해진 뒤」라고 했어요. 이 글은 어느 쪽이 맞다고 정하지 않아요. 조선 후기 학자 안정복은 「두 집안이 혼인을 정한 후에」 신랑 집에서 보내는 것을 사주단자라고 한다고 적었어요.
부르는 이름도 여럿이에요. 표준국어대사전은 사성(四星), 사주, 주단(柱單)을 같은 말로 올렸어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은 『증보사례편람』이 이것을 「주단」이라고 부르고 홍겹보를 제시했다고 적었어요.
지금 나라가 정해 둔 약혼 서식은 따로 있어요. 건전가정의례준칙(대통령령) 제7조 제2항은 약혼 당사자가 「별표 2의 약혼서를 교환한다」고 정했고, 별표 2 약혼서에는 남녀 각각 성명, 생년월일, 주소를 적는 칸이 있어요. 다만 이 준칙 원문에는 사주도 단자도 한 번도 나오지 않아서, 약혼서를 사주단자의 공식 서식으로 볼 근거는 없어요.
종이는 흰 간지, 다섯 칸으로 접어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이 꼽은 사주단자의 특징 다섯 가지 가운데 첫째가 반드시 흰색 간지로 봉투와 사주 쓸 종이를 준비한다는 거예요.
여기서 간지는 천간과 지지를 묶은 간지가 아니라 종이 이름이에요. 표준국어대사전은 간지(簡紙)를 「두껍고 품질이 좋은 편지지」라고 풀었어요. 흔히 장지로 만들어 정중한 편지에 썼고, 같은 장지로 된 편지봉투에 넣었다고도 적었어요. 『광례람』 제작법은 「대간지(大簡紙)」 한 폭으로 겉봉을 만든다고 했어요.
사전이 옮긴 접는 법은 이래요.
| 항목 | 한국일생의례사전이 옮긴 내용 |
|---|---|
| 칸 수 | 간면을 오행이 되도록 5칸으로 접어요 |
| 접는 방향 | 의례서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접는다고 되어 있어요 |
| 칸 폭 | 첫 번째 칸은 두 번째 칸의 절반이 되도록 접어요 |
| 글 쓰는 자리 | 가장 가운데 있는 칸 |
| 쓰는 도구 | 먹 |
다섯 칸인 까닭을 사전은 「오행이 되도록」이라고만 적었어요. 셋째부터 다섯째 칸의 폭을 어떻게 맞추는지는 서술이 없어요. 첫 칸이 둘째 칸의 절반이라는 데까지만 확인돼요.
황해도 사례에서는 종이 길이도 나와요. 그 지역에서는 사주단자를 사성이라고 부르고, 길이 1척 정도의 간지를 다섯 칸으로 접어서 쓴다고 했어요. 다섯 칸이라는 점은 『광례람』과 같아요.
가운데 칸에 쓰는 것은 년, 월, 일, 시
『광례람』 방식에서 가운데 칸에 들어가는 글은 「○년 ○월 ○일 ○시」 하나예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의 특징 둘째도 다섯 칸으로 접은 중앙에 먹으로 생년월일시를 쓴다고 정리했어요.
안정복이 1758년에 사위를 맞으며 정한 편지 서식에도 같은 정보가 들어가요. 문장은 「저의 자식은 모년 모월 며칟날 모신 모시에 태어났습니다」이고, 원문은 「子生于某年某月第幾日某辰某時」예요. 이 편지는 앞에서 「저의 몇째 자식 아무개」라고 신랑 이름을 밝히고, 끝에는 「모군 관향 모성명」을 적어 보내는 사람의 관향과 성명을 남기게 했어요. 겉봉에는 「모성 모관 집사 근봉」을 쓰게 했어요. 다만 이건 사주단자 그 자체가 아니에요. 안정복이 고례의 납채 편지에 신랑의 연명을 담자고 제안하면서 만든 서식이에요.
사주단자에 무엇을 더 적는지에 대해 받은 자료에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분명히 해 둘게요.
- 생년월일을 음력으로 쓰는지 양력으로 쓰는지
- 이름이나 본관을 함께 쓰는지, 건명(乾命) 같은 머리말을 붙이는지
- 한자로 쓰는지 한글로 쓰는지
사주단자 그 자체에 이 셋을 어떻게 쓰라고 정한 문장은 두 사전과 두 문집 어디에도 없었어요. 이름과 관향이 들어가는 건 안정복이 사주단자 대신 쓰자고 제안한 납채 편지 쪽이에요. 집안에서 따로 전해 오는 방식이 있다면 그걸 따르고, 없다면 양가가 미리 맞춰 두면 혼선이 줄어요. 음력 생일과 양력 날짜가 해마다 얼마나 벌어지는지는 음력 생일을 양력으로 바꿔 본 글에서 볼 수 있어요.
간지로 적는다면 변환기 값부터 보세요
황해도 사례는 생년월일시를 육십갑자에 따른 간지로 쓴다고 했어요. 숫자 대신 간지로 적으려면 태어난 날을 간지로 바꿔야 해요.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은 날짜마다 세차, 월건, 일진을 함께 보여 줘요. 「월력요항 작성에 관한 규정」 제4조 제2항은 「년, 월, 일에 배당하는 간지는 각각 세차, 월건, 일진」이라고 정해 두었어요.
예를 들어 신랑이 1995년 5월 20일 토요일에 태어났다면 변환 결과는 아래 첫 줄과 같아요.
| 양력 | 음력 | 세차 | 월건 | 일진 |
|---|---|---|---|---|
| 1995년 5월 20일 (토) | 1995년 4월 21일 | 을해 | 신사 | 신해 |
| 1996년 6월 15일 (토) | 1996년 4월 30일 | 병자 | 계사 | 계미 |
첫 줄을 간지로 옮기면 「을해년 신사월 신해일」이 돼요. 둘째 줄은 양력으로는 6월이지만 음력으로는 4월 30일이라서 월건이 음력 4월에 붙은 계사로 나와요. 변환기 월건은 이렇게 음력 달에 붙은 이름이라, 절기로 달을 가르는 사주 월주와는 기준이 달라요.
그래서 변환기의 세차와 월건은 음력 설과 음력 초하루에 바뀌고, 입춘이나 망종 같은 절기 날에는 바뀌지 않아요. 한국천문연구원 2026년 달력자료에는 입춘이 2월 4일 5시 2분, 음력 1월 1일이 2월 17일, 망종이 6월 6일 0시 48분으로 적혀 있어요. 같은 해 변환기 값을 날짜별로 받아 보면 이래요.
| 양력 | 음력 | 세차 | 월건 |
|---|---|---|---|
| 2026년 2월 3일 | 2025년 12월 16일 | 을사 | 기축 |
| 2026년 2월 4일 (입춘) | 2025년 12월 17일 | 을사 | 기축 |
| 2026년 2월 16일 | 2025년 12월 29일 | 을사 | 기축 |
| 2026년 2월 17일 (설) | 2026년 1월 1일 | 병오 | 경인 |
| 2026년 6월 6일 (망종) | 2026년 4월 21일 | 병오 | 계사 |
| 2026년 6월 14일 | 2026년 4월 29일 | 병오 | 계사 |
| 2026년 6월 15일 | 2026년 5월 1일 | 병오 | 갑오 |
입춘 날에도 세차는 그대로 을사이고, 설날이 돼서야 병오로 넘어가요. 월건도 망종 날에는 계사 그대로이고, 음력 5월 1일인 6월 15일이 돼서야 갑오로 바뀌어요. 사주에서는 관행으로 입춘에 해가 바뀌고 절기에 달이 바뀐다고 보기 때문에, 입춘과 설 사이에 태어난 사람은 연주가, 그달 절기와 음력 초하루 사이에 태어난 사람은 월주가 변환기 값과 어긋날 수 있어요. 연주 쪽 차이는 2027년 띠를 입춘과 설 기준으로 나눠 본 글에 날짜별로 정리돼 있고, 절기로 가른 한 달이 며칠씩인지는 추분과 절기 간격을 센 글에서 볼 수 있어요.
사주단자에 어느 쪽 간지를 적어야 한다는 문장은 받은 자료 어디에도 없어요. 간지로 적을 생각이라면 입춘과 설 사이에 태어났는지, 태어난 날이 그달 절기와 음력 초하루 사이에 드는지부터 확인하세요. 한국천문연구원 달력자료 페이지는 2021년 이후 자료만 싣고, 그 이전 해는 월력요항에서 확인하라고 안내해요. 이번에는 1996년 절기 시각을 받지 못해서 위 첫 표의 둘째 줄을 절기로 가르지는 않았어요.
태어난 시는 어떻게 적나요
『광례람』 방식은 「○시」까지 쓰게 했고, 안정복의 서식도 「모시」까지 넣었어요. 그런데 한국천문연구원 변환기는 날짜만 넣는 방식이라 시의 간지는 보여 주지 않아요. 옛 서식의 「시」를 자시, 축시 같은 십이시로 적었는지도 받은 자료에는 나오지 않아요. 참고로 표준국어대사전은 자시를 「십이시의 첫째 시」로 풀고, 밤 열한 시부터 오전 한 시까지라고 적었어요.
태어난 시각을 십이시로 옮길 때는 표준시와 서머타임 문제가 끼어들 수 있어요. 이 부분은 사주 시간 보정을 일곱 가지로 점검한 글에 따로 정리돼 있어요.
다산 정약용은 아예 시를 빼자고 했어요. 『여유당전서』 가례작의 혼례 편에서 다산은 사주단자를 경첩(庚帖)이라고 부르며 세속에서 사주단자라고 한다고 적었어요. 그 원문이 「庚帖俗謂之四柱單子。卽壻之生年月日也。今俗竝錄生時無義。今擬只書年月日。」예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은 이 대목을 「지금 풍속은 생년월일시까지 쓰는데 이는 의미가 없으니, 이제 생년월일만을 기록하자」로 옮겼어요.
다산의 말은 하나의 주장이었어요. 같은 사전은 사주단자의 특징을 정리하면서 여전히 생년월일시를 쓴다고 적었어요.
봉투는 풀로 붙이지 않아요
『광례람』 제작법의 봉투와 싸릿가지 과정을 순서대로 옮기면 이래요.
- 대간지 한 폭으로 겉봉을 만들고, 겉에 「四柱」 두 글자를 써요.
- 사주를 쓴 단자를 봉투에 넣고 위 뚜껑을 접어요. 풀로 붙여서 봉하지는 않아요.
- 싸릿가지를 봉투 길이보다 아래위로 1cm 정도 길게 잘라 다듬고, 위쪽 1cm 정도를 남긴 채 가운데를 갈라요.
- 갈라 놓은 싸릿가지 사이에 봉투를 끼워요.
- 붉은 명주 타래 실로 싸릿가지 끝을 겉이 매듭지지 않도록 묶고, 나머지 실을 위로 끌어올려 윗부분도 매듭지지 않도록 묶어요.
싸릿가지에 끼우는 까닭을 사전은 「사주 봉투가 구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 듯하다」라고 추정으로 적었어요. 그리고 근래에는 사주함에 넣기 때문에 싸릿가지에 끼우지 않는다고 덧붙였어요. 사전 문장대로라면 요즘은 3번부터 5번 대신 사주함에 넣는 거예요. 사주함의 크기나 모양은 사전에 서술이 없어요.
사주보는 붉은 쪽이 겉으로 와요
봉투를 싸는 보자기가 사주보예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은 사주보를 이렇게 적었어요.
- 네 귀퉁이에 녹색 금전지를 달아요.
- 안팎이 모두 붉은 비단 겹보, 또는 겉이 다홍색이고 안이 남색인 비단 겹보로 만들어요.
- 쌀 때는 반드시 보자기의 붉은색이 겉이 되게 싸요.
- 끈은 매지 않아요.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는 조금 달라요. 사주보를 「사주단자를 싸는 작은 보. 청홍의 비단으로 안팎을 다르게 만든다」라고 적었어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의 「안팎이 모두 붉은 비단 겹보」와는 서술이 갈려요. 두 사전 모두 붉은빛이 들어간다는 점은 같아요.
실제로 쓰인 사주보는 더 다양했어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은 2000년에 한국전통생활문화학회가 한 사례조사를 인용하면서, 사주보로 붉은색 겹보, 분홍색 겹보, 청홍 겹보, 홍색과 녹색의 겹보 네 가지가 쓰였다고 적었어요. 네 가지 모두 겹보자기였고, 끈이 없었고, 네 귀퉁이에 녹색 금전지를 달았어요.
낯선 낱말 두 개도 풀어 둘게요. 표준국어대사전은 금전지를 「보자기의 네 귀나 끈에 다는, 금종이로 만든 장식품」이라고 풀고, 주로 좋은 일이 있을 때 쓴다고 적었어요. 겹보는 「거죽과 안을 맞추어 겹으로 만든 보자기」예요.
끈 대신 근봉 띠를 둘러요
보자기로 싼 다음에는 끈을 묶지 않고 근봉 띠를 둘러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은 근봉을 「두꺼운 간지를 잘라서 양끝을 붙이고 그곳에 ‘근봉’이라고 길이 방향으로 쓴 둥근 고리」라고 설명했어요. 이 띠도 끈으로 묶지는 않는다고 적었어요.
근봉(謹封)은 「삼가 봉한다」는 뜻이에요. 표준국어대사전은 「편지 겉봉의 봉한 자리에 쓰는 말」이라고 풀었고, 안정복의 편지 서식 겉봉에도 「근봉」이 들어가요.
한국일생의례사전이 정리한 특징 다섯 가지를 다시 모으면 흰 간지, 다섯 칸 가운데에 먹으로 쓴 생년월일시, 붉은색이 겉인 겹보, 매지 않는 끈, 근봉이에요.
지역마다 함께 보낸 것
한국일생의례사전은 세 지역의 사례를 들었어요.
| 지역 | 함께 보낸 것 | 싸는 법과 전달 |
|---|---|---|
| 전라남도 | 간략한 예물, 치마저고리 한 감 | 사주는 적색과 남색 겹보에 싸고, 예물과 함께 남색 보자기에 싸서 중매인이나 매파가 전달 |
| 경상남도 | 저고리 한 감, 납채서 | 중매인을 통해 전달 |
| 황해도 | 간단한 예물 | 사성을 봉투에 넣어 집안 자제가 전달, 생년월일시는 간지로 기록 |
경상남도에서는 양가가 합의한 뒤 청혼을 한다고 적었어요. 이 세 곳 말고 다른 지역의 방식은 이 사전 항목에 나오지 않아요.
보내고 나면 신부 집에서 날을 받아요
안정복은 「신랑의 연명을 받은 다음에 날을 받아서 보내주는 것을 ‘연길단자’라고 한다」고 적었어요. 신랑 집이 사주단자를 보내면 신부 집이 혼인 날짜를 정해 알리는 순서예요.
안정복은 신부 집이 날을 정하는 이 풍속이 예의 뜻과 맞지 않는다고 봤어요. 그러면서도 시속을 따라 신부 집이 날짜를 정해 통보하되, 단자로 하지 않고 날짜만 알린다고 정했어요. 같은 글에는 신부 집이 택일해 보낸 뒤 신랑의 옷 치수를 청하는 「의양단자」 이야기도 나와요.
옛사람들이 사주단자를 두고 남긴 말
안정복은 사주단자가 고례가 아니라고 적었어요. 『순암집』 제14권의 「적절히 참작한 혼례 의식」은 무인년에 사위 권일신을 맞을 때 정한 글이에요. 안정복이 살았던 1712년에서 1791년 사이의 무인년은 1758년 하나예요.
그는 옛 예법의 납채와 문명이 지금 풍속에는 둘 다 없다고 했어요. 대신 두 집안이 혼인을 정한 뒤 신랑의 연명을 써 보내는 것을 사주단자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고례가 아니라고 적었어요. 그래서 고례대로 납채를 하되 신랑의 연명을 갖추고 여자의 연명도 청하자고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꾸짖었어요. 세속에서 연명을 고쳐 길요(吉曜)에 맞추거나 나이를 줄여 나쁜 연명을 감추는 일이 있는데, 「대례의 시작부터 속임수를 먼저 쓰니 매우 옳지 못하다」는 거예요.
정약용은 생시를 빼자고 했고, 신부 집도 같은 방식으로 답하자고 했어요. 신부 집도 작은 종이 단자로 답하면서, 원문의 「紙末書女之生年月日」처럼 종이 끝에 여자의 생년월일을 신랑의 예와 같이 쓰자는 제안이에요. 또 사주단자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동전을 주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했어요. 다만 인정상 막을 수 없으니 베나 비단으로 대신하되, 두세 자든 여덟아홉 자든 괜찮다고 적었어요.
한국고전종합DB 오픈API로 사주단자를 검색하면 15건이 나와요. 누리집 통합검색 화면은 고전번역서 9건, 일성록 2건 같은 여러 자료 묶음을 합쳐 24건으로 보여 줘요. 그 가운데 몇 건은 사주단자가 실제로 오간 장면을 남겼어요.
- 『심리록』 갑진년(1784) 충청도 제천 이기대 옥사에서 정조는 「이기대의 죄는 오로지 사주단자를 억지로 보낸 데 있고」라고 한 뒤, 곧이어 이를 「예법을 갖추려는 거조」로 보아 죄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형추를 한 번 한 다음 풀어 주라고 판부했어요.
- 『일성록』 정조 19년(1795) 5월 25일 기사에도 혼인을 원한 사람이 강제로 사주단자를 보냈다는 대목이 있어요.
- 『하재일기』 정유년(1897) 음력 2월 17일에는 용인 박 오위장 집의 사주단자가 오자 3월에서 4월 사이에 혼례를 치르자는 뜻을 전했다고 적혀 있어요.
- 같은 일기 무술년(1898) 음력 9월 15일에는 아침에 사주단자를 적어 두었다가 양주의 김 선달 집으로 부쳤다는 기록이 있어요.
- 신해년(1911) 음력 2월 7일에는 사이가 틀어진 부부의 남편 쪽이 사주단자를 도로 찾아가 영원히 이혼했다고 적혀 있어요.
이 일기의 날짜는 음력이에요. 1897년과 1911년 기사는 첫머리에 그날 일진을 병자라고 적었는데, 한국천문연구원 변환기에 음력 날짜로 넣으면 두 날 모두 병자가 나오고 양력으로 넣으면 병오와 무신이 나와요.
왕실에서 궁합을 어떻게 다뤘는지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서 궁합을 세어 본 글에 따로 있어요.
의례서 방식대로 준비할 때 챙길 것
- 종이는 흰 간지를 써요. 두껍고 품질이 좋은 편지 종이예요.
- 접기는 다섯 칸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접고 첫 칸을 둘째 칸의 절반으로 해요.
- 글은 가운데 칸에 먹으로 「○년 ○월 ○일 ○시」를 써요.
- 겉봉에는 「四柱」 두 글자를 쓰고, 뚜껑은 풀로 붙이지 않아요.
- 보자기는 붉은 쪽이 겉으로 오게 싸요. 네 귀퉁이에는 녹색 금전지가 달려요.
- 마무리는 끈 대신 근봉 띠예요.
- 간지로 적는다면 변환기 값을 보고, 입춘과 설 사이에 태어났는지와 그달 절기와 음력 초하루 사이에 태어났는지를 따로 확인해요.
이 글이 확인하지 않은 것
- 사주단자의 현대 공식 서식은 찾지 못했어요. 이번에 받은 민속사전, 국어사전, 조선 후기 문집과 기록 가운데 현대 서식을 정한 문장은 없었어요. 현행 건전가정의례준칙은 성명, 생년월일, 주소를 적는 약혼서를 정했지만 사주단자는 다루지 않아요.
- 사주단자에 음력과 양력 가운데 어느 쪽으로 적는지, 이름이나 본관이나 건명을 쓰는지, 한자와 한글 가운데 무엇으로 쓰는지는 자료에 없어요. 안정복의 납채 편지 서식에는 이름과 관향이 들어가지만, 그건 사주단자 서식이 아니에요.
- 사주함의 규격과 누가 단자를 써야 하는지도 서술이 없어요.
- 1996년처럼 2020년 이전 해의 입춘과 절기 시각은 이번에 받지 못했어요. 한국천문연구원 달력자료 페이지는 그 이전 자료를 월력요항에서 확인하라고 안내하는데, 월력요항은 이번에 열지 않았어요.
- 궁합이나 길흉은 다루지 않았어요. 이 글은 사주단자를 쓰고 싸는 방식만 옮겼어요.
정리하면
- 한국일생의례사전이 『광례람』 제작법과 함께 정리한 방식은 흰 간지를 다섯 칸으로 접어 가운데 칸에 「○년 ○월 ○일 ○시」를 먹으로 쓰는 것이에요. 첫 칸은 둘째 칸의 절반이에요.
- 겉봉에는 「四柱」를 쓰고 풀로 봉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싸릿가지에 끼웠고, 근래에는 사주함에 넣어요.
- 사주보는 붉은색이 겉으로 오게 싸고, 끈 대신 근봉 띠를 둘러요. 표준국어대사전은 사주보를 청홍 비단으로 안팎을 다르게 만든다고 풀었어요.
- 간지로 적는다면 변환기의 세차와 월건은 음력 설과 초하루에 바뀌고, 사주는 관행으로 입춘과 절기에 해와 달을 가른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 안정복은 사주단자가 고례가 아니라고 했고 연명을 고치는 일을 꾸짖었어요. 정약용은 생시를 빼고 생년월일만 쓰자고 했어요.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일생의례사전의 사주단자 항목,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의 순암집·여유당전서·심리록·일성록·하재일기,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과 2026년 달력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Open API에서 받은 월력요항 작성에 관한 규정과 건전가정의례준칙 현행본을 옮겼어요. 조회 시점은 2026년 10월 3일 오후 2시 48분에서 3시 30분 사이예요.